주말 오후, 30년 만에 북악스카이웨이 들러. 남산에 갔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 손 잡고 갔던 원조남산왕돈까스 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두근거리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돈까스 한 접시는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외식이었으니까요. 지금이야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흔한 메뉴가 됐지만, 그 시절의 맛과 설렘이 여전히 남아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순서 입니다. ^^
30년 만에 다시 마주한 그 자리
서울 중구 소파로 107, 클릭.구글맵 단독건물입니다
주차는 1층 안과 외부에 7-8대 정도 가능합니다.
2층과 3층은 식당입니다. 1층에 계단과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영업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 *매주 화요일은 정기휴무입니다.


원조남산왕돈까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그대로 서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예전 기억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도착하자마자 “아, 여기 맞다” 싶었어요. 건물 외벽에는 큼지막하게 “Since 1977″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 런닝맨과 놀면뭐하니 출연 배너들이 나란히 걸려 있더라고요. 방송에 여러 번 나올 만큼 이 동네에서는 꽤 알려진 곳이었나 봅니다.
계단을 오르며 느낀 세월의 무게

원조남산왕돈까스 매장은 2층에 있고 1층은 주차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데 한 칸 한 칸마다 “Since 1977”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벽면에는 그동안 다녀간 손님들의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어요. “37년의 전통”이라는 문구도 눈에 들어왔는데, 그 세월만큼 벽지도 색이 바래고 손때가 묻어 있어서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메뉴판을 마주하고

원조남산왕돈까스 메뉴는 정말 단출했습니다. 왕돈까스 14,500원, 생선까스 15,500원, 매운왕돈까스 15,000원, 치즈왕돈까스 16,500원, 남산우동 9,000원. 여기에 공기밥 1,000원, 음료수(환타·사이다·콜라) 2,000원, 매운소스 500원이 더해지는 구조였어요. 사실 치즈왕돈까스와 왕돈까스, 매운왕돈까스 사이에서 한참 고민했는데, 결국 왕돈까스와 치즈왕돈까스를 하나씩 시키고 매운소스를 500원에 추가하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꽤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어요. 치즈왕돈까스는 당연히 왕돈까스보다 크기가 작을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크기가 거의 비슷했고 치즈 양도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놀랐습니다.
스프 한 그릇, 그리고 셀프 깍두기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한 크림 스프가 먼저 나왔어요. 노르스름한 색에 부드러운 목넘김이라 본식 전에 속을 데우기 딱 좋았습니다. 반찬으로는 청양고추와 깍두기가 세팅됐는데, 깍두기는 큰 통에 담겨 나와서 먹고 싶은 만큼 직접 덜어 먹는 방식이었어요. 소소하지만 이런 셀프 방식도 옛날식 경양식당 특유의 정서 같았습니다.
그 시절 그 맛, 소스에 담긴 기억

돈까스가 나왔는데, 접시 한가득 진한 갈색 소스가 부어져 있었어요. 포크로 고기를 찍어 소스에 푹 담가 먹는 방식, 딱 옛날 경양식당 스타일 그대로였습니다. 튀김옷은 두툼하고 바삭했고, 소스는 달큼하면서 은은하게 매콤한 감칠맛이 났어요. 저희가 오전 첫 손님이었던 터라, 새 기름에 튀겨줬을 거라 믿고 먹었습니다. 새 기름에 튀기면 웬만한 건 다 맛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맛이 엄청나게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고 딱 무난한 “쏘쏘” 수준이었어요. 스프도 무난했고, 깍두기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어릴 때 그 맛 그대로라고는 못 하겠지만, 그 시절의 정서만큼은 분명히 남아있었어요.



치즈왕돈까스는 자르는 순간 치즈가 길게 늘어나서, 사진 찍는 재미까지 더해줬습니다. 반찬으로 나온 아삭한 오이고추와 생양파, 쌈장 조합은 다소 특이했지만, 아삭한 식감이 나름 괜찮았어요.
솔직하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다만 30~50대라면 공감하실 것 같은데, 세월이 느껴지는 만큼 시설은 확실히 노후했습니다. 천장 철골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얼룩과 곰팡이 흔적이 꽤 진하게 남아있어서 살짝 신경이 쓰였어요. 바닥 타일도 낡았고, 화장실도 오래된 티가 났고요. 그리고 창가에 붙어 있던 “깍두기는 드실 만큼 덜어 드세요” 안내문을 보고는 조금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영수증 이면지에 급하게 손글씨로 써서 창문 안쪽에 거꾸로 붙여둔 모습이었는데, 이건 세월의 흔적이라기보다는 그냥 관리에 신경을 덜 쓴 것 같은 느낌이 강했거든요. 화려하고 깔끔한 요즘 식당과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오래된 걸 감안하더라도,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싶은 지점들이었어요. 물은 셀프였고, 깍두기도 먹을 만큼 덜어 먹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겨웠던 순간
주방을 지키는 할머니, 계산을 봐주시는 아주머니, 주차장을 관리해주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서빙을 담당하는 젊은 직원분까지 계셨어요. 모두 가족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투박하고. 어색하지만. 세련되거나 유니크한 서비스는 아니어도 나름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원조남산왕돈까스. 30년 만의 재회를 마치며
어릴 적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는다는 건, 맛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 경험이랄까요. 엄청나게 감탄할 만큼 맛있었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지만, 남산 쪽에 갈 일이 있다면 원조집으로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갔던 사람과도 “그때는 진짜 이게 최고의 음식이었잖아”라며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요즘은 돈까스가 쉽게 먹을 수 있는 흔한 메뉴가 됐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외식이었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된 하루였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어릴적 추억이 서린 맛집이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나들이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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